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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

중국 고대 판소리식 서사와 유튜브 스토리텔링

by Rich & Cozy 2025. 4. 10.

1. 고대 중국의 판소리식 서사 구조

중국 고대의 구술 서사는 ‘서사인(說書人)’ 혹은 ‘평서인(評書人)’이라는 직업군을 통해 대중 속에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마치 한국의 판소리꾼처럼, 극적이고 리드미컬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청중을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무대는 번화한 도시의 찻집이나 시장, 사원 앞마당 같은 공간으로, 언제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였죠.
‘평서(評書)’는 이야기꾼이 혼자 여러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사건을 재현하는 형식입니다. 손으로 탁자를 치며 장면 전환을 알리거나, 갑작스런 대사 변화를 통해 반전을 이끌어내는 기술은 한국 판소리의 '아니리'와 '발림'과 흡사한 방식입니다. 청중의 감정을 조율하며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유도하는 고도의 감정 연출 능력은, 오늘날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갖춰야 할 ‘공감능력’과도 직결됩니다.
이처럼 고대 중국의 판소리식 서사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서, 사회와 정서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까지 요구되는 ‘공공 예술’의 형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고대 판소리식 서사와 유튜브 스토리텔링

2. 유튜브 스토리텔링

오늘날 유튜브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은 과거의 이야기꾼들과 유사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의 ‘방식’과 ‘전달 매체’입니다. 유튜브에서는 영상, 자막, 배경음악, 편집효과, 심지어 AI 음성까지 이야기의 구성 요소로 작동하며, 이러한 다양한 장치들이 복합적으로 몰입감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평서인이 ‘손탁’을 치며 다음 장면을 암시했다면, 유튜브 스토리텔러는 컷 전환, 클로즈업, 배경음악의 텐션 상승 등을 통해 같은 효과를 냅니다. 또 유튜브의 ‘좋아요’, ‘댓글’, ‘구독’은 청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받아들이는 ‘현대의 박수’와 같은 기능을 하죠.
특히 쇼츠 영상이나 내러티브 브이로그에서는 ‘도입 – 위기 – 전환 – 결말’이라는 고전 서사 구조를 1~3분 내에 강렬하게 압축하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이는 과거 서사인의 “전개 – 고조 – 절정 – 결말” 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즉, 인간의 이야기 본능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소비하고 표현하는 플랫폼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이죠.

 

3. 판소리식 서사와 유튜브의 접점

흥미로운 점은, 일부 크리에이터들이 고의적으로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중국의 인기 유튜버 리쯔치(李子柒)는 말보다 장면의 구성, 시간의 흐름, 자연의 소리를 통해 시청자에게 ‘한 편의 시’를 전합니다. 이는 과거의 이야기꾼이 언어만으로 완성했던 세계를 영상이라는 도구로 재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한복 입은 이야기꾼’이나 ‘고전 사극 풍’으로 꾸며진 채널들이 판소리적 리듬과 말투를 차용하며 조회수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서사 방식은 현대의 디지털 콘텐츠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감동 코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또한 유튜브나 빌리빌리(Bilibili) 같은 플랫폼에서 ‘서사 전통 복원’ 콘텐츠가 늘고 있습니다. 민간설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하거나, 전통 복식을 입고 고대사를 재현하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등장은, 판소리식 서사의 미학이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4.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교훈: 고전 서사의 힘

현대의 유튜버가 고대 이야기꾼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닌, 청중의 정서에 ‘깊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고대의 판소리 서사처럼 유튜브도 결국 사람의 감정, 공감, 그리고 몰입을 중심에 두는 서사예술의 일종입니다.

강력한 도입부(起):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첫 장면은 고전 서사의 ‘서두’와 같습니다.
감정의 흐름(承轉): 단조롭지 않게 감정의 굴곡을 설계해야 합니다.
반전 혹은 깨달음(轉):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유머, 감동, 놀라움을 줘야 합니다.
명확한 결말(結): 구독, 다음 영상 유도 등 ‘서사의 마무리’가 있어야 기억에 남습니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알고리즘을 넘어, 인간 본연의 감정 흐름과 일치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콘텐츠로 이어집니다.

중국 고대의 판소리식 서사와 유튜브의 현대적 스토리텔링은 언뜻 보면 전혀 다른 시대의 산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핵심은 동일합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에게, 사람의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